전 세계 대중교통 전동화의 핵심 질문: '수소인가, 배터리인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전 세계 도시들이 버스 전동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 가장 현실적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많은 교통 당국이 딜레마에 빠진다. 특히 긴 거리, 가파른 언덕, 높은 승객 탑승률, 제한된 차고지 공간 같은 '까다로운 조건'은 배터리 전기버스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이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수소버스'였다.
하지만 체코 프라하의 대중교통 운영사 DPP(DPP)가 실제 운영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이 논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DPP는 프라하에서 가장 까다로운 노선 중 하나인 58번 버스 노선에서 '부분 가선 트롤리버스(partial trolleybus)'를 도입해 디젤 버스와의 총비용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보조금을 제외하면 디젤 대비 약 10% 높은 비용, 보조금을 포함하면 오히려 디젤보다 약간 낮은 비용이 나왔다.
이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까다로운 노선 = 수소'라는 공식을 깨고, '노선의 특성에 맞춘 전기 인프라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본 분석에서는 프라하의 사례를 통해 직접 전기 방식(트롤리버스)이 왜 수소버스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그 경제성과 기술적 우위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프라하 58번 노선: 까다로운 조건의 집합체
프라하 58번 노선은 대중교통 전동화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불린다. 이 노선은 가파른 언덕, 높은 승객 수요, 잦은 배차 간격, 대형 굴절버스 운행 등 여러 악조건이 결합된 곳이다. DPP는 이 노선에서 디젤 버스, 순수 배터리 전기버스, 그리고 부분 가선 트롤리버스의 운영 비용을 비교했다.
주요 비용 비교표 (1km당 운영 비용)
| 구분 | 디젤 버스 (기준) | 순수 배터리 전기버스 | 부분 가선 트롤리버스 (58번) | 비고 |
|---|---|---|---|---|
| 보조금 전 km당 비용 | 100% (기준) | 104~105% | 약 110% | 차량 감가상각, 인프라 건설·유지보수 포함 |
| 보조금 후 km당 비용 | 100% (기준) | 디젤 이하 | 디젤 이하 (약간 낮음) | 차량 및 인프라 보조금 포함 |
| 연간 주행 거리 | 약 50,000 km | 약 67,000 km | 65,000~70,000 km 목표 | 전기버스의 높은 가동률이 경제성 개선 |
| 배터리 에너지 통과율 | 해당 없음 | 100% | 약 40% | 배터리 수명과 교체 비용에 직접 영향 |
배터리 에너지 통과율 비교
| 방식 | 배터리 통과 에너지 비율 | 배터리 용량 | 배터리 교체 주기 | 충전 방식 |
|---|---|---|---|---|
| 순수 배터리 버스 | 100% | 대용량 (가장 힘든 날 기준) | 4~6년 | 차고지 충전 (장시간 정차 필요) |
| 부분 가선 트롤리버스 | 약 40% | 소용량 (일반 주행 기준) | 8~12년 (예상) | 가선 구간에서 주행 중 충전 + 종점 급속 충전 |
위 표에서 가장 중요한 수치는 배터리 에너지 통과율이다. 순수 배터리 버스는 모든 구동 에너지가 배터리를 통과해야 하므로 배터리 용량이 커야 하고, 충·방전 횟수가 많아 수명이 짧아진다. 반면 부분 가선 트롤리버스는 가파른 언덕이나 고속 주행 구간에서는 가선에서 직접 전력을 공급받고, 배터리는 유연성이 필요한 구간에서만 사용된다. 이는 배터리 크기, 열 관리, 교체 비용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분석: 프라하 데이터가 수소버스 논쟁에 던지는 3가지 질문
1. '까다로운 노선'의 정의를 다시 묻다
버스 전동화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소 케이스(hydrogen case)'는 대개 '배터리로는 불가능한 노선'을 전제로 시작된다. 그러나 프라하의 데이터는 이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배터리 vs 수소'가 아니라 '어떤 전기 인프라를 설계할 것인가'이다.
'까다로운 조건'을 해결하는 세 가지 전기화 전략
- 차고지 충전(Depot Charging): 주행 거리가 짧고, 야간 충전 시간이 충분한 노선에 적합. 가장 단순한 구조이지만, 배터리 용량이 커야 하고 차고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 종점 충전(Opportunity Charging): 종점에서의 대기 시간(약 5~10분)을 활용해 급속 충전하는 방식. 중간 정도의 주행 거리와 배차 간격이 있는 노선에 적합하다.
- 주행 중 충전(In-motion Charging): 프라하 58번 노선의 핵심 전략. 언덕이나 혼잡 구간에만 가선을 설치하고, 나머지 구간은 배터리로 주행한다. 배터리 용량을 최소화하고, 가동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프라하의 사례는 대부분의 '까다로운 노선'이 위 세 가지 전략의 조합으로 해결 가능함을 시사한다. 수소는 이 세 가지 옵션을 모두 검토한 후에야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한다.
2. 수소버스의 숨겨진 비용: 연료 공급망의 덫
수소버스의 경제성을 평가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버스 자체의 가격'만 비교하는 것이다. 프라하의 분석은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수소버스는 생산(또는 압축/액화), 저장, 운송(또는 현장 생산), 주입 설비, 안전 시스템, 전담 정비 인력 등 복잡한 연료 공급망이 필요하다.
직접 전기 방식 vs 수소 방식의 인프라 비교
| 항목 | 직접 전기 방식 (트롤리버스 + 배터리) | 수소 연료전지 버스 |
|---|---|---|
| 에너지 전달 체인 | 전력망 → 가선/충전기 → 배터리/모터 | 전력망 → 전해조 → 압축/액화 → 저장 → 운송 → 주입 → 연료전지 → 모터 |
| 인프라 구성 요소 | 가선, 변전소, 충전기, 배터리 | 전해조, 압축기, 저장탱크, 운송 트레일러, 수소 주유소, 안전 설비 |
| 에너지 효율 (Well-to-Wheel) | 약 70~80% | 약 25~35% |
| 인프라 수명 | 20~30년 (가선, 변전소) | 10~15년 (전해조, 연료전지 스택) |
| 유지보수 복잡성 | 상대적 단순 (전기 기술) | 고압·극저온 설비 필요 (전문 기술) |
프라하 DPP의 Jan Barchánek 국장이 밝혔듯, 직접 전기 방식은 '전기에서 바퀴까지'의 에너지 전달 단계가 단순하다. 반면 수소는 전기를 수소로 변환하고, 다시 압축/액화하고, 운송하고, 다시 전기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크다. 이는 단순히 '탄소 배출'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비용의 지속 가능성 문제로 직결된다.
3. 보조금의 함정: '일회성 지원' vs '지속 가능한 인프라'
프라하의 데이터에서 주목할 점은 '보조금 후 디젤 이하'라는 결과다. 그러나 Barchánek 국장은 보조금이 비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재분배'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보조금이 끝난 후 무엇이 남는가'이다.
- 직접 전기 인프라 투자: 가선, 변전소, 충전기는 한 번 설치하면 20~30년간 여러 노선과 차량 세대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가 된다. 보조금이 종료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
- 수소 인프라 투자: 수소 충전소와 연료전지 스택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초기 파일럿 단계의 보조금이 종료되면 높은 연료비와 유지보수비가 그대로 노출된다. '반복 조달(repeat procurement)'의 경제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프라가 노후화될 위험이 크다.
프라하의 선택은 명확하다. 일회성 보조금에 의존하기보다, 장기적으로 도시 전체의 대중교통 전동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전기버스 보급 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결론: 프라하가 한국 대중교통에 주는 교훈
프라하의 사례는 단순히 '트롤리버스가 좋다'는 기술적 선호를 넘어, **'노선 중심의 시스템 설계'**라는 방법론적 전환을 요구한다. 한국의 많은 지자체가 전기버스 도입을 추진하면서 '주행 거리'와 '충전 시간'이라는 두 가지 변수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프라하의 데이터는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한국 전기버스 정책에의 시사점
한국은 2023년 기준으로 약 3,500대의 전기버스를 보급했지만, 일부 노선에서는 배터리 용량 부족, 충전 인프라 부족, 겨울철 주행 거리 감소 등의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프라하의 '부분 가선 트롤리버스' 모델은 다음과 같은 한국형 대안을 고려하게 한다.
- 언덕이 많은 지역: 부산, 강릉, 제주 등 지형이 험난한 지역의 간선 노선에 '주행 중 충전' 방식을 도입하면 배터리 용량을 줄이고 차량 중량을 낮출 수 있다.
- 혼잡 간선도로: 서울의 간선버스(BRT) 노선은 승객 수요가 많고 정차가 잦다. 가선을 일부 구간에만 설치해 주행 중 충전을 병행하면, 차고지 충전의 부담을 줄이고 배차 간격을 단축할 수 있다.
- 충전 인프라 투자 효율화: 가선 설치가 어려운 지역은 '종점 급속 충전'을, 가능한 지역은 '가선 충전'을 조합하면 전체 시스템 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다.
프라하의 핵심 교훈
프라하 DPP의 분석은 다음 원칙을 명확히 했다.
- '어려운 노선'은 존재하지만, '수소만이 답인 노선'은 드물다.
- 버스 전동화는 '차량 교체'가 아닌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 보조금은 '지속 가능한 공공 인프라'를 만드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한국도 이제 '수소버스 vs 전기버스'라는 이분법적 논쟁에서 벗어나, 각 노선의 지형, 승객 수요, 운영 스케줄, 기존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맞춤형 전동화 전략'을 수립할 때다. 프라하의 58번 버스가 보여준 것은, 기술의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사실이다.